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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분석: 영화 '퍼펙트 데이즈' (빔 벤더스, 2023)

by 영화/드라마 공부하기 2025. 4. 1.

작품분석: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영화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는 독일 출신의 거장 빔 벤더스(Wim Wenders)가 연출하고 일본 배우 야쿠쇼 코지(Kôji Yakusho)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일상 속 단순함과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작 배경

"퍼펙트 데이즈"는 단순히 영화사의 흐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라, 독특한 외부 기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라는 도쿄 시부야구의 공공 화장실 리모델링 사업과 연계되어 탄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적인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공공 화장실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이었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단편 영화나 사진집 제작이 제안되었습니다. 빔 벤더스는 이 제안을 받고 도쿄를 방문했으며, 단순한 단편 대신 장편 극영화를 만들겠다고 역제안했습니다. 그는 “화장실이 등장하지만 화장실 이야기가 아닌 픽션”을 구상했고, 코로나19 이후 도쿄의 일상과 문화를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공동 각본가이자 프로듀서인 타카사키 타쿠마(Takuma Takasaki)와 협력하여 시나리오를 완성했으며, 이는 독일과 일본의 문화적 융합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로 발전했습니다. 외부의 실질적인 계기(공공 프로젝트)가 예술적 영감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일상 속 소재를 극으로 발전시키는 아이디어의 원천을 보여줍니다. 또한 벤더스의 “도쿄의 지금을 찍고 싶다”는 의지는 특정 시대와 장소의 정서를 포착하려는 작가적 태도를 반영합니다.

 


감독 : 빔 벤더스

빔 벤더스는 1945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의 대표 감독입니다. "파리, 텍사스"(1984, 칸 황금종려상), "베를린 천사의 시"(1987, 칸 감독상)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감각적인 영상미와 철학적 주제를 결합한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그는 일본 영화, 특히 오즈 야스지로(Yasujirô Ozu)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1985년 다큐멘터리 "도쿄가"(Tokyo-Ga)를 통해 이를 드러냈습니다. "퍼펙트 데이즈"에서 주인공 이름 ‘히라야마’는 오즈의 "꽁치의 맛"(1962)에서 차용한 것으로, 그의 일본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보여줍니다.

벤더스는 음악 애호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퍼펙트 데이즈"의 사운드트랙에 반영되어 루 리드(Lou Reed), 니나 시몬(Nina Simone) 등 6~70년대 올드 팝이 주인공의 삶과 조화를 이루며 극의 분위기를 완성합니다. 그의 접근법에서 배울 점은, 단순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철학적 울림으로 확장시키는 능력과 타문화에 대한 열린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촬영지: 도쿄 시부야구와 주변

영화는 도쿄, 특히 시부야구를 중심으로 촬영되었습니다.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로 새롭게 단장한 17개 공공 화장실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며, 히라야마의 일상은 도쿄 변두리의 소박한 주거지와 공원, 헌책방, 선술집 등에서 펼쳐집니다. 도쿄의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고층 빌딩 대신, 평범한 골목과 자연광이 스며드는 나무들이 강조되며, 이는 영화의 주제인 ‘일상의 아름다움’과 연결됩니다.

촬영 기간은 단 17일로, 이는 벤더스가 “빠르고 열렬한 촬영”이었다고 묘사한 바 있습니다. 극작가로서 이 점은 시나리오의 효율성과 촬영지의 선택이 얼마나 긴밀히 연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도쿄라는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히라야마의 삶의 리듬과 정서를 반영하는 캐릭터로 기능합니다.

 

시나리오

시나리오는 빔 벤더스와 타카사키 타쿠마가 공동으로 작성했으며, 약 3주 만에 완성되었습니다. 영화는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반복적인 일상을 중심으로, 그의 과거를 직접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변 인물(동료 다카시, 조카 니코, 선술집 마마 등)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균열과 변화를 암시합니다. 이야기 구조는 순환적이며, 첫날의 루틴이 나머지 날들의 ‘주선율’로 작용해 변주됩니다. 이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처럼 일상의 반복 속에서 미묘한 감정 변화를 포착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이 시나리오의 강점은 최소한의 대사와 사건으로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히라야마가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코모레비’)을 필름 카메라로 찍는 장면은 대사 없이 그의 내면적 평온을 시각적으로 전달합니다. 또한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라는 대사는 철학적 주제를 함축하며, 극의 엔딩에서 히라야마의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표정으로 이어지는 여운을 남깁니다.

 

미장센

미장센은 "퍼펙트 데이즈"의 핵심 요소로, 히라야마의 삶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공간 배치

히라야마의 소박한 집(이부자리, 화분, 카세트 플레이어)과 공공 화장실은 그의 겸손한 삶을 상징합니다. 특히 화장실의 깔끔한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배경과 맞물리며, 일상 속 예술성을 강조합니다.

소품

카세트 테이프, 필름 카메라, 포크너 소설 등 아날로그적 소품은 히라야마의 과거와 현대를 잇는 상징으로, 그의 단순함 속 깊이를 드러냅니다.

조명

자연광이 주를 이루며, 특히 ‘코모레비’를 포착하는 장면에서 햇빛과 그림자가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의상

히라야마의 청소부 유니폼은 그의 직업적 정체성을, 편안한 평상복은 인간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대사가 많지 않은 만큼 특히 미장센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소품과 공간을 통해 대사 없이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입니다. 히라야마가 청소 도구를 정성껏 다루는 모습은 그의 장인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며,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게 만듭니다.

 

촬영기법

촬영은 프란츠 러스틱(Franz Lustig)이 맡았으며,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피나"(2011)에서도 협력한 바 있습니다. 

고정 샷과 롱테이크

히라야마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찍겠다는 의도에 따라, 고정된 프레임과 긴 호흡의 롱테이크가 자주 사용됩니다. 이는 반복 속 미묘한 변화를 관객이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딥 포커스

배경과 전경 모두 선명하게 포착되어, 도쿄의 일상과 히라야마의 행동이 동시에 부각됩니다.

자연광 활용

인공 조명 대신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해 현실감을 살렸습니다. 특히 아침 햇살과 나무 그림자는 영화의 시각적 서정을 강화합니다.

아이 레벨 샷

히라야마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앵글로, 관객이 그의 삶에 몰입하도록 유도합니다.

이러한 기법은 시나리오의 정서적 리듬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특히 롱테이크는 대사의 공백을 채우며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이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주제 분석

이 영화의 주제는 ‘일상의 완벽함’과 ‘삶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히라야마는 과거의 상처를 암시하는 단서(조카와의 만남, 누군가와의 재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단순한 루틴 속에서 평온을 찾습니다. 이는 벤더스가 말한 “특별한 메시지”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관객이 느끼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영화는 순환(반복되는 하루)과 전진(시간의 흐름)을 병치하며,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순간—을 통해 삶의 모순적 아름다움을 제시합니다. 극작가로서 이 주제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보편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단순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드라마로 확장시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시나리오의 경제성, 미장센의 상징성, 촬영기법의 정서적 효과를 배울 수 있는 교과서적 작품입니다. 빔 벤더스는 도쿄라는 낯선 공간에서 히라야마의 삶을 통해 보편적 인간 경험을 그려냈고, 이는 작가가 특정 장소와 인물을 통해 더 큰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최소한의 요소로 최대한의 감정을 끌어내는 접근법은, 극작에서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핵심에 집중하는 연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일상의 디테일을 관찰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좋은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