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속에서 피어난 사랑 –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이 영화는 기존의 규칙들을 뛰어넘는 독창적인 스타일과 복잡한 플롯,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족과 삶에 대한 감정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는 ‘자유롭게 상상하되, 감정은 진짜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의 연출 – 장르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기
감독 ‘다니엘스(다니엘 콴 & 다니엘 쉐이너트)’는 이 영화에서 액션, 코미디, 드라마, SF, 멜로, 심지어 애니메이션까지 모든 장르를 섞어버립니다. 얼핏 보면 정신없는 혼돈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는 굉장히 정밀하게 계산된 연출이 숨어 있습니다.
다중우주의 설정
무한한 가능성을 상징하는 ‘멀티버스’를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삶의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주인공 에블린은 평범한 세탁소 주인이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요리사, 무술가, 심지어 핫도그 손가락을 가진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죠.
정서의 중심은 ‘가족’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도 영화의 핵심은 에블린과 딸 조이(조부 투바키), 남편 웨이먼드와의 관계입니다. 시나리오적으로 보면 외부적 사건(우주 붕괴)을 통해 내부적 갈등(세대 충돌, 정체성의 혼란)을 극대화시킨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 요소
영화는 이민자 가족, 특히 중년의 중국계 미국 여성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중심에 놓습니다. 미국 사회 안에서 느끼는 소외, 가족 내의 문화 충돌, 세대 간의 갈등이 주요 갈등 요소로 작용하죠. 에블린은 딸의 성 정체성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실패감을 딸에게 투사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실적인 갈등이 환상적인 ‘멀티버스’라는 장치를 통해 더욱 도드라지게 표현됩니다.
플롯 구조 – 복잡한 듯 보이지만 명확한 흐름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매우 실험적인 영화지만 기본적인 3막 구조로도 분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영화가 3막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고요.
1막 – 현실의 한계
에블린은 세탁소 세금 문제, 무기력한 남편, 말 안 통하는 딸, 시어머니의 방문 등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멀티버스’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우주를 구할 열쇠라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2막 – 수많은 선택지 속의 혼돈
에블린은 다양한 우주를 여행하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을 봅니다. 동시에 딸 조이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 없다’는 공허함에 빠져 있고 그것이 이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3막 – 포용과 화해
에블린은 무수한 가능성 중에서도 ‘지금 이 삶’을 선택합니다. 딸과 화해하고 남편의 온유함을 받아들이며 삶을 있는 그대로 껴안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미장센 – 혼돈 속의 질서
이 영화의 미장센은 ‘과장과 파격’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각적인 과잉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과 우주의 혼란을 반영한 감각적인 장치입니다.
- 색채 사용: 각 우주마다 톤과 스타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어두운 현실, 형광빛 코미디, 고요한 예술영화 같은 세계가 교차합니다.
- 의상과 소품: 조이(조부 투바키)의 의상은 아방가르드 그 자체입니다.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정체성의 혼란과 고통을 시각화한 도구입니다.
- 공간 배치: 세탁소, 국세청, 우주, 길거리, 심지어 바위가 된 세계까지, 공간이 캐릭터 감정의 확장선이 됩니다.
카메라 촬영 기법 – 편집과 시점의 유희
- 속도감 있는 컷 편집: 다양한 세계가 빠르게 전환되며 관객의 감정도 따라잡기 벅찰 정도로 몰아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감정은 놓치지 않습니다.
- 비주얼 개그와 상징성의 결합: 핫도그 손가락, 너드 스틱 등은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지만 결국 ‘다름을 받아들이는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 슬로모션과 고정 숏: 감정의 절정을 표현할 때는 오히려 고요한 화면을 사용해 여운을 줍니다.
캐릭터 분석 – 모든 우주를 지나 결국 ‘지금 여기’로
에블린 (양자경)
- 성격: 통제욕 강하고 완벽주의적. 하지만 그 밑에는 좌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 변화: 처음에는 모든 걸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랑’으로 성장합니다.
- 상징성: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현재’를 선택하는 존재.
조이 / 조부 투바키 (스테파니 수)
- 성격: 반항적이고 혼란스러우며 정체성에 대해 괴로워합니다.
- 상징성: 무한한 가능성 속의 공허함. 하지만 결국엔 엄마의 사랑을 원했던 존재.
- 명대사:
- “If nothing matters, then all the pain and guilt you feel for making nothing of your life goes away.”
웨이먼드 (키 후이 콴)
- 성격: 소심하고 약해 보이지만, 인내심과 사랑으로 세상을 대합니다.
- 핵심 메시지:
- “Be kind, especially when you don’t know what’s going on.”
그의 대사는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요약합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
1. 바위로 변한 세계에서의 대화
- 장면: 자막으로만 진행되는 바위와 바위의 대화.
- 감정: 언어도 사라진 공간에서 두 존재가 조용히 서로를 이해합니다.
- 시나리오적 의미: 극단적으로 ‘정지된 세계’에서도 감정은 존재할 수 있다는 표현.
2. 계단 난투극 + 감정 대사 병치
- 코믹한 액션과 진지한 감정 대사가 동시에 이어지며, 장르를 뛰어넘는 새로운 방식의 감정 전달을 보여줍니다.
시나리오 공부를 위한 포인트 정리
- 장르를 섞되, 감정은 흔들리지 말 것.
- 플롯이 복잡해도 중심이 되는 관계(부모-자식)는 단순하고 진심이어야 함.
-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구조는 굉장히 현대적인 이야기 방식.
- 독특한 설정(멀티버스)도 결국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수단일 뿐.
마무리하며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기존의 시나리오 문법을 깨뜨리면서도 결국엔 굉장히 따뜻한 이야기로 귀결되는 영화입니다. 혼란스럽게만 느껴지는 구조 속에서도 ‘지금 여기 있는 삶이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든 그 중심에 ‘인물’과 ‘감정’이 있다면, 그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닿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는 작품입니다.